[월간조선] “정부에 희망이 없다면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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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 10월 22~24일 시청 일대… 9개국 76개 북한 인권 민간단체 참여
⊙ “새 정부에 찍혀 세무조사 받을까 걱정된다”며 후원 중단도
⊙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탈북민 신도들이 2000만원 모아”
⊙ “‘재밌는 북한인권대회’…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 필사 성경 원본 등 전시”
[이 사람] 임창호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 조직위원장
“10월에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북한인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대회의 취지를 공감하고 후원을 약속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돌연 후원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답니다. 새 정부의 눈치가 보이고, 혹여 세무조사라도 받을까 걱정이라면서요. 북한 인권 문제는 우파, 좌파 어떤 정부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 아닙니까?”
임창호(林昌鎬)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불과 한 달 앞둔 서울 북한인권대회의 운영 경비를 모으느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 만나는 데 쓴다고 했다. 지난 9월 18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임창호 목사를 만났다.
“포럼과 문화 콘텐츠가 어우러진 행사”
10월 22~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열리는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는 국내외 북한 인권 전문가와 전(全) 세계 30개국에 흩어져 있는 탈북민 디아스포라가 참가한다. ‘그들을 자유케 하라(Let Them Be Free)’라는 주제로 열리는 행사는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와 미국 민간단체인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이 공동 주최한다. 수잰 숄티(Suzanne Scholte) 미(美) 디펜스포럼 대표, 니콜라스 에버슈타트(Nicholas Eberstadt) 미국기업연구소 석좌, 국제형사재판소(ICC) 2대 소장을 지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 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TMTC) 대표 임현수 목사, 짐 로저스의 수행비서를 지낸 탈북민 정유나씨 등이 연사로 나선다.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임창호 목사가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의 A부터 Z까지 총괄하고 있다.
― 대회 로고가 특이하네요. 사람 지문인가요?
“지문은 모든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징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는데, 북한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데 착안해서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이미지로 상처 입은 지문을 형상화했고, 자유·평등·박애를 의미하는 파랑·하양·빨강색을 사용해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상처를 받아서 갈라진 지문과 인권을 상징하는 세 컬러의 조합은 북한의 참혹한 현실 속에 자유를 갈구하는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 북한 인권과 관련한 대회가 많은데, 이번 대회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북한 인권 포럼과 문화 콘텐츠가 한데 어우러지는 국제 컨벤션 행사입니다. 9개 국가에서 76개 북한 인권 민간단체가 힘을 모았고, 30년간 펼쳐 온 북한 인권 개선운동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집대성 및 총평가가 이뤄지는 자리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 절호의 기회입니다.”
“기업들, 대선 이후 후원에 난색”
임창호 위원장에 의하면 대회를 기획한 것은 2023년이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는 국내에 북한 주민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민간단체 협의체 단독 창구(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는 22년 동안이나 있어 왔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 협의체 단독 창구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에 북한인권센터의 윤여상 박사와 손광주 전(前)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등의 주도로 지역별로 민간운동을 펼쳐 온 5개국 59개 북한 인권 민간단체들이 2023년 8월에 서울에 모여 협의체를 만들었다. 북한인권운동을 위한 첫 번째 국제적 협의체인 이 기구는 2024년 9월에 통일부 산하 정식 사단법인으로 등록했고, 한국·미국·캐나다·뉴질랜드·영국·프랑스·네덜란드·우크라이나 등 9개국의 76개 단체가 가입했다. 협의체는 1년 6개월 동안 수차례 모임을 가진 끝에 오는 10월에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를 개최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보다 강력한 국제 연대를 형성키로 했다.
“협의체를 결성했을 때는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얘기하고, 한국에서는 통일에 대한 열기가 점차 식어 갈 때였습니다. 북한인권운동 단체들이 ‘우리라도 통일의 불씨를 살려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북한 인권 개선운동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남북한의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이니까요. 그래야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뿐 아니라 동북아의 항구적인 안정과 평화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우정 어린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요.
국제행사를 치르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모(某) 중견기업 1억원 등 구두(口頭)로 자금 지원을 약속한 곳이 꽤 있었어요. 얼추 대회 운영비는 충당될 것 같아서 분과위원회를 만들고 해외 연사 초청, 각종 전시를 기획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 어떻게요?
“1억원을 약속했던 한 회사는 대통령 선거 전에 1000만원을 지원하고 이후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과거에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북한 인권 관련 일에 지원했다가 공연히 트집 잡힐까 걱정이라면서요. 동료 단체장의 말을 들어 보니 한 업체의 대표는 5000만원이 담긴 현금 다발을 직접 들고 찾아왔대요. ‘계좌이체를 하면 혹여 세무조사를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현금으로 죄다 찾아왔다’면서요.”
“교회들, 기도회마저 거부”
― 이재명 정부가 대북 전단 뿌리는 것을 금지했지만, 북한인권대회 개최까지 막은 것은 아닌데요.
“기업들이 지레 걱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부에서 인권대회를 하지 말라며 공문서를 보낸 것도 아니고 방송에 나온 것도 아닌데 소문이 난 건지…. 이재명 정부가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이니까 북한 인권 문제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제가 목회 일을 하기도 하고 교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에 교회들에도 자금 지원과 기도회를 요청했지만, 그것도 잘 안 됐습니다. 기도회를 여는 것마저 거절한 교회가 10곳도 넘습니다. 한 목사님은 ‘좋은 일을 한다. 당연히 도와야죠’라고 말하더니 얼마 뒤에 ‘힘들겠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당회에서 논의를 했는데 장로들이 ‘정부 눈에 거슬리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반대하더랍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데요.”
― 왜요?
“인권이 왜 정치 문제입니까?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는 정치적 이념, 인종, 성별, 피부색 등 어떤 조건이라도 인권은 존중돼야 하고 차별당해서도 안 된다고 돼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동족(同族)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1000만 이산가족 때문에 울었고, 북한 정권을 싫어하면서도 북한의 불쌍한 주민들을 돕는 데는 거부감이 없고, 김정은 정권이 북한의 젊은이들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총알받이로 파병하는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동족의 문제가 이렇게 치부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국민이 가진 북한 주민에 대한 동정심을 말살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인권에 관심이 없는 국가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파 정부든 좌파 정부든, 설령 중간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인류 보편의 문제를 얘기하는데 왜 이것이 정치적으로 왜곡되어야 합니까? 이것이 G8 국가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인 대한민국이 인권을 대하는 태도입니까?”
오토 웜비어의 어머니가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에 보낸 서신(全文)
북한의 감옥과 평양 밖에서 썩어 가는 사람을 위해 항거해 달라”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에 오토 웜비어의 부스가 마련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어머니인 신디 웜비어가 수잰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를 통해 편지를 보냈다. 전문(全文)은 아래와 같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2015년 12월 이후에 오토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2016년 6월에 오토가 돌아온 이후로 저는 황량한 북한 땅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오토를 매 순간 그리워합니다. 저는 좋은 기억과 생각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영부인은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체포된 것에 언짢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감옥에서는 오토가 북한에서 당했듯이 식물인간이 되도록 고문당하지는 않겠지요. 북한은 오토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주지 않았고, 14개월 넘게 은폐하여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제발 북한의 감옥과 평양 밖에서 썩어 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항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Thank you to all attending this conference. For me it is hard to believe I have not seen Otto since December 2015. However, in the time since his return in June 2016, I have not given up hope for the North Koreans fighting for justice in a desolate ungodly place. Please help me remain hopeful for change.
Otto is missed every second of every day. Yet I hang onto only good memories and thoughts. Your last President Yoon and First Lady Kim cared deeply about North Korean human rights abuses. I am dismayed by their arrests. But at least in a South Korean prison they won’t be tortured into a vegetative state like Otto was in North Korea. Then instead of trying to get Otto the medical care he needed in credible hospitals, North Korea hid Otto and kept him in a hopeless state, away from everyone who loved him for over 14 months. Please do something, protest for all the people left to rot in their prison system and outside Pyongyang.〉
“필사적으로, 목숨 걸고 한다”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를 코앞에 둔 임창호 위원장의 일과는 후원금을 구하러 사람 만나는 일이 절반 이상이다. 100명을 만나면 98명은 ‘좋은 일 하시네요. 생각해 볼게요’라며 돌아선다. 그 자리에서 선뜻 지원을 약속하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얘기를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양 또 한다. 부산에 살지만 일주일에 4~5번은 후원자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추석 연휴에도 경기 일산, 하남시에서 약속이 있단다. 임 위원장은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한다”고 했다.
―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후원금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인데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행사에 들어가는 경비를 줄이고자 수많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가위질 하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안 좋기도 하고 정부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도움의 손을 내밀 것이라고 확신하고 오늘도 돌아다닙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도 힘을 보탰고요. 우리 교인들이 모은 헌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 부산에서 목회를 하시지요.
“사하구 다대동에 탈북민을 위한 ‘장대현교회’를 2007년에 세웠습니다.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 최초로 설립한 탈북민 교회입니다. 성인 30여 명, 중고등학생 30여 명, 어린아이들 5~6명인 작은 교회예요. 정권이 바뀌어서 지원이 어렵다는 기업인들을 만나고서는 탈북민 교회가 먼저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끼리 성금을 모아 보자’고 했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9월까지 2000만원 정도 선금을 지급해야 할 곳이 있었거든요. 우리 교회 신도들이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탈북민들이 대부분이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절반입니다. 이런 형편의 신도들이 몰래 숨겨 둔 비상금 통장을 깨고, 한 집은 남편 이름, 부인 이름으로 각자 따로 성금을 내서 결국 2000만원을 모았습니다. 다 같이 그 돈을 세며 펑펑 울었습니다. 조직위원장인 저로서는 더더욱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열어야 한다는 소명(召命)이 생겼습니다.”
“통일은 포기할 수 없는 민족의 과제”
임창호 위원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2004년에 미국 휴스턴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를 맡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우연한 기회에 탈북민을 만나 북한인권운동에 투신했다. 이후에 미국 내 전국적인 북한인권단체를 조직하고, 탈북민을 위한 교회를 부산에 세우고 그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만들며 수천 명의 탈북민을 만났다. 뜻하지 않은 계기에 쌈짓돈을 한 푼 두 푼 꺼낸 신도들 생각이 유달라 보였다.
“이 대회는 정말 소중합니다. 통일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과제입니다. 요즘 북한 핵(核) 얘기가 자주 들리는데, 저는 북한 인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한의 참혹한 주민 인권 유린 실태는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바깥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국제인권기구와 NGO 단체들이 다양한 형태로 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했고, 탈북민 3만 5000여 명이 한국 땅에 입국해 김씨 일가 북한 정권에서 70년 넘게 자행한 인권 유린을 구체적으로 증언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한반도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며, 김씨 일가는 인권 문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부에 희망이 없다면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국민이 바쁘다면 아직 일할 수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하고요.”
― 이번에 한국을 찾는 인사 중에 역시 분단 경험이 있는 독일 출신이 있던데, 이분은 요즘 나오는 ‘두 국가론’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싶네요.
“요즘 젊은이 중에는 통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는 이유로, 또 70년 넘게 분단돼 있었다는 이유로 통일을 찬성하는 비중이 작다고들 합니다. 이건 잘못된 정보가 지식으로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코리아재단 측과 얘기를 해보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등을 비롯해 독일 지도자들은 돈 계산을 한 적이 없으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합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합니다. 돈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의 하나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김구 선생은 ‘우리의 소원은 첫째도 통일, 둘째도 통일’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고 싶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과감히 맡겨”
2025 서울 북한세계인권대회는 타이트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10월 22일 개회식과 함께 K-팝 가수 선예의 초청공연과 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송상현 교수의 ‘북한 인권과 국제형사재판소, 그리고 자유통일’ 주제 강연, 북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둘째 날인 23일에는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석좌, 수잰 숄티 대표,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독일 인권단체 ‘SARAM’ 대표 등의 강연과 국제인권전문가 보고, 탈북 디아스포라 포럼, 미래를 여는 청년 포럼이 열린다. 시청 앞의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 전시실에서는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의 필사 성경 원본과 장길수 가족 탈북 관련 사진들이 전시되고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서울광장 야외부스 전시장에는 미국 오토 웜비어 부스, 일본 메구미 부스, 한국 국적 피랍 억류자 6인 부스 등을 마련한다. 임창호 위원장은 “대회에 참여하는 연사들은 한 마음이다. 북한 주민들을 노예 같은 삶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이번 주제”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을 떠올리면 ‘재미없다’ ‘어둡다’ ‘무겁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물론 김씨 일가가 처참하게 인권을 짓밟기에 북한 인권 문제가 심각한 이슈인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정직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달 방법만을 쓴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좌파들은 어떤 이슈든 미화하고 재밌게 만들어 일반 대중의 마음을 훔쳐 가지만 우파들은 그러지 못하잖습니까. 똑같이 김치찌개를 팔더라도 그릇, 테이블, 조명, 가게 분위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마치 ‘김치찌개는 맛으로만 경쟁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했다고나 할까요.”
“국민이 보고, 듣고, 체험하는 놀이터”
― 이번 대회는 다른가요?
“저희는 ‘재밌는 북한인권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밌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회 자체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겁니다. 첫날, 둘째 날 콘서트를 하고, 30여 개 주제로 전시회를 합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딱딱한 사연뿐 아니라 자두 한 알을 먹었다가 총살당한 북한 주민 이야기, 8·13·20세 한국과 일본·미국 아이들과 비교로 보는 북한 주민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 인권 유린을 고발한 다양한 스토리로 다가갈 생각이에요. 또 북한의 클래식 음악, 대중음악 등 예술 문화 퍼포먼스도 선보일 겁니다.”
― 큰 규모로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청 인근의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과 지하철 1, 2호선 연결 지하에 전시실을 마련해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이 필사한 성경, 또 죽는 순간까지 북한에서 써내려 간 한국판 《안네의 일기》 원본을 전시합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가족들과 증인들의 생생한 비디오 증언도 계속 상영하고요. 전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모전, 스피치 대회를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세션을 과감하게 맡겼습니다. 저희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두운 주제일지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고 관심 가질 수 있도록 보고, 듣고, 체험하는 놀이터로 만들 예정입니다. 부디 북한 인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많은 관심을 부탁합니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 10월 22~24일 시청 일대… 9개국 76개 북한 인권 민간단체 참여
⊙ “새 정부에 찍혀 세무조사 받을까 걱정된다”며 후원 중단도
⊙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탈북민 신도들이 2000만원 모아”
⊙ “‘재밌는 북한인권대회’…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 필사 성경 원본 등 전시”
[이 사람] 임창호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 조직위원장
“10월에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북한인권대회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대회의 취지를 공감하고 후원을 약속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돌연 후원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답니다. 새 정부의 눈치가 보이고, 혹여 세무조사라도 받을까 걱정이라면서요. 북한 인권 문제는 우파, 좌파 어떤 정부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 아닙니까?”
임창호(林昌鎬)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불과 한 달 앞둔 서울 북한인권대회의 운영 경비를 모으느라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 만나는 데 쓴다고 했다. 지난 9월 18일,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임창호 목사를 만났다.
“포럼과 문화 콘텐츠가 어우러진 행사”
10월 22~24일 서울시청 일대에서 열리는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는 국내외 북한 인권 전문가와 전(全) 세계 30개국에 흩어져 있는 탈북민 디아스포라가 참가한다. ‘그들을 자유케 하라(Let Them Be Free)’라는 주제로 열리는 행사는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와 미국 민간단체인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이 공동 주최한다. 수잰 숄티(Suzanne Scholte) 미(美) 디펜스포럼 대표, 니콜라스 에버슈타트(Nicholas Eberstadt) 미국기업연구소 석좌, 국제형사재판소(ICC) 2대 소장을 지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 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TMTC) 대표 임현수 목사, 짐 로저스의 수행비서를 지낸 탈북민 정유나씨 등이 연사로 나선다. 북한인권민간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임창호 목사가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의 A부터 Z까지 총괄하고 있다.
― 대회 로고가 특이하네요. 사람 지문인가요?
“지문은 모든 사람이 가진 고유한 특징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성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는데, 북한에는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다는 데 착안해서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이미지로 상처 입은 지문을 형상화했고, 자유·평등·박애를 의미하는 파랑·하양·빨강색을 사용해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상처를 받아서 갈라진 지문과 인권을 상징하는 세 컬러의 조합은 북한의 참혹한 현실 속에 자유를 갈구하는 우리 모두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 북한 인권과 관련한 대회가 많은데, 이번 대회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북한 인권 포럼과 문화 콘텐츠가 한데 어우러지는 국제 컨벤션 행사입니다. 9개 국가에서 76개 북한 인권 민간단체가 힘을 모았고, 30년간 펼쳐 온 북한 인권 개선운동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집대성 및 총평가가 이뤄지는 자리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 절호의 기회입니다.”
“기업들, 대선 이후 후원에 난색”
임창호 위원장에 의하면 대회를 기획한 것은 2023년이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는 국내에 북한 주민에게 인도적인 지원을 하기 위한 민간단체 협의체 단독 창구(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는 22년 동안이나 있어 왔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민간단체 협의체 단독 창구가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에 북한인권센터의 윤여상 박사와 손광주 전(前)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등의 주도로 지역별로 민간운동을 펼쳐 온 5개국 59개 북한 인권 민간단체들이 2023년 8월에 서울에 모여 협의체를 만들었다. 북한인권운동을 위한 첫 번째 국제적 협의체인 이 기구는 2024년 9월에 통일부 산하 정식 사단법인으로 등록했고, 한국·미국·캐나다·뉴질랜드·영국·프랑스·네덜란드·우크라이나 등 9개국의 76개 단체가 가입했다. 협의체는 1년 6개월 동안 수차례 모임을 가진 끝에 오는 10월에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를 개최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보다 강력한 국제 연대를 형성키로 했다.
“협의체를 결성했을 때는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얘기하고, 한국에서는 통일에 대한 열기가 점차 식어 갈 때였습니다. 북한인권운동 단체들이 ‘우리라도 통일의 불씨를 살려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북한 인권 개선운동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남북한의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이니까요. 그래야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뿐 아니라 동북아의 항구적인 안정과 평화가 이뤄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우정 어린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요.
국제행사를 치르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모(某) 중견기업 1억원 등 구두(口頭)로 자금 지원을 약속한 곳이 꽤 있었어요. 얼추 대회 운영비는 충당될 것 같아서 분과위원회를 만들고 해외 연사 초청, 각종 전시를 기획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 어떻게요?
“1억원을 약속했던 한 회사는 대통령 선거 전에 1000만원을 지원하고 이후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과거에 회사가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북한 인권 관련 일에 지원했다가 공연히 트집 잡힐까 걱정이라면서요. 동료 단체장의 말을 들어 보니 한 업체의 대표는 5000만원이 담긴 현금 다발을 직접 들고 찾아왔대요. ‘계좌이체를 하면 혹여 세무조사를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현금으로 죄다 찾아왔다’면서요.”
“교회들, 기도회마저 거부”
― 이재명 정부가 대북 전단 뿌리는 것을 금지했지만, 북한인권대회 개최까지 막은 것은 아닌데요.
“기업들이 지레 걱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부에서 인권대회를 하지 말라며 공문서를 보낸 것도 아니고 방송에 나온 것도 아닌데 소문이 난 건지…. 이재명 정부가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분명해 보이니까 북한 인권 문제를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것 같았습니다.
제가 목회 일을 하기도 하고 교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기에 교회들에도 자금 지원과 기도회를 요청했지만, 그것도 잘 안 됐습니다. 기도회를 여는 것마저 거절한 교회가 10곳도 넘습니다. 한 목사님은 ‘좋은 일을 한다. 당연히 도와야죠’라고 말하더니 얼마 뒤에 ‘힘들겠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당회에서 논의를 했는데 장로들이 ‘정부 눈에 거슬리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반대하더랍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데요.”
― 왜요?
“인권이 왜 정치 문제입니까?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는 정치적 이념, 인종, 성별, 피부색 등 어떤 조건이라도 인권은 존중돼야 하고 차별당해서도 안 된다고 돼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동족(同族)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1000만 이산가족 때문에 울었고, 북한 정권을 싫어하면서도 북한의 불쌍한 주민들을 돕는 데는 거부감이 없고, 김정은 정권이 북한의 젊은이들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총알받이로 파병하는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동족의 문제가 이렇게 치부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국민이 가진 북한 주민에 대한 동정심을 말살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인권에 관심이 없는 국가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파 정부든 좌파 정부든, 설령 중간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인류 보편의 문제를 얘기하는데 왜 이것이 정치적으로 왜곡되어야 합니까? 이것이 G8 국가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인 대한민국이 인권을 대하는 태도입니까?”
오토 웜비어의 어머니가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에 보낸 서신(全文)
북한의 감옥과 평양 밖에서 썩어 가는 사람을 위해 항거해 달라”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에 오토 웜비어의 부스가 마련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의 어머니인 신디 웜비어가 수잰 숄티 디펜스포럼 대표를 통해 편지를 보냈다. 전문(全文)은 아래와 같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2015년 12월 이후에 오토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2016년 6월에 오토가 돌아온 이후로 저는 황량한 북한 땅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저는 오토를 매 순간 그리워합니다. 저는 좋은 기억과 생각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영부인은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이 체포된 것에 언짢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감옥에서는 오토가 북한에서 당했듯이 식물인간이 되도록 고문당하지는 않겠지요. 북한은 오토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주지 않았고, 14개월 넘게 은폐하여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절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제발 북한의 감옥과 평양 밖에서 썩어 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항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Thank you to all attending this conference. For me it is hard to believe I have not seen Otto since December 2015. However, in the time since his return in June 2016, I have not given up hope for the North Koreans fighting for justice in a desolate ungodly place. Please help me remain hopeful for change.
Otto is missed every second of every day. Yet I hang onto only good memories and thoughts. Your last President Yoon and First Lady Kim cared deeply about North Korean human rights abuses. I am dismayed by their arrests. But at least in a South Korean prison they won’t be tortured into a vegetative state like Otto was in North Korea. Then instead of trying to get Otto the medical care he needed in credible hospitals, North Korea hid Otto and kept him in a hopeless state, away from everyone who loved him for over 14 months. Please do something, protest for all the people left to rot in their prison system and outside Pyongyang.〉
“필사적으로, 목숨 걸고 한다”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를 코앞에 둔 임창호 위원장의 일과는 후원금을 구하러 사람 만나는 일이 절반 이상이다. 100명을 만나면 98명은 ‘좋은 일 하시네요. 생각해 볼게요’라며 돌아선다. 그 자리에서 선뜻 지원을 약속하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그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얘기를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은 양 또 한다. 부산에 살지만 일주일에 4~5번은 후원자를 찾아 전국을 떠돌고 추석 연휴에도 경기 일산, 하남시에서 약속이 있단다. 임 위원장은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한다”고 했다.
―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후원금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쓸데없는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인데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행사에 들어가는 경비를 줄이고자 수많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페인트를 칠하고 가위질 하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안 좋기도 하고 정부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도움의 손을 내밀 것이라고 확신하고 오늘도 돌아다닙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도 힘을 보탰고요. 우리 교인들이 모은 헌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 부산에서 목회를 하시지요.
“사하구 다대동에 탈북민을 위한 ‘장대현교회’를 2007년에 세웠습니다.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 최초로 설립한 탈북민 교회입니다. 성인 30여 명, 중고등학생 30여 명, 어린아이들 5~6명인 작은 교회예요. 정권이 바뀌어서 지원이 어렵다는 기업인들을 만나고서는 탈북민 교회가 먼저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끼리 성금을 모아 보자’고 했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서 9월까지 2000만원 정도 선금을 지급해야 할 곳이 있었거든요. 우리 교회 신도들이 형편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탈북민들이 대부분이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절반입니다. 이런 형편의 신도들이 몰래 숨겨 둔 비상금 통장을 깨고, 한 집은 남편 이름, 부인 이름으로 각자 따로 성금을 내서 결국 2000만원을 모았습니다. 다 같이 그 돈을 세며 펑펑 울었습니다. 조직위원장인 저로서는 더더욱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열어야 한다는 소명(召命)이 생겼습니다.”
“통일은 포기할 수 없는 민족의 과제”
임창호 위원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2004년에 미국 휴스턴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를 맡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우연한 기회에 탈북민을 만나 북한인권운동에 투신했다. 이후에 미국 내 전국적인 북한인권단체를 조직하고, 탈북민을 위한 교회를 부산에 세우고 그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를 만들며 수천 명의 탈북민을 만났다. 뜻하지 않은 계기에 쌈짓돈을 한 푼 두 푼 꺼낸 신도들 생각이 유달라 보였다.
“이 대회는 정말 소중합니다. 통일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과제입니다. 요즘 북한 핵(核) 얘기가 자주 들리는데, 저는 북한 인권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북한의 참혹한 주민 인권 유린 실태는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바깥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국제인권기구와 NGO 단체들이 다양한 형태로 북한의 인권 유린을 규탄했고, 탈북민 3만 5000여 명이 한국 땅에 입국해 김씨 일가 북한 정권에서 70년 넘게 자행한 인권 유린을 구체적으로 증언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한반도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며, 김씨 일가는 인권 문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부에 희망이 없다면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국민이 바쁘다면 아직 일할 수 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야 하고요.”
― 이번에 한국을 찾는 인사 중에 역시 분단 경험이 있는 독일 출신이 있던데, 이분은 요즘 나오는 ‘두 국가론’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싶네요.
“요즘 젊은이 중에는 통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는 이유로, 또 70년 넘게 분단돼 있었다는 이유로 통일을 찬성하는 비중이 작다고들 합니다. 이건 잘못된 정보가 지식으로 확산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코리아재단 측과 얘기를 해보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등을 비롯해 독일 지도자들은 돈 계산을 한 적이 없으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의 통합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고 합니다. 돈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민족의 하나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김구 선생은 ‘우리의 소원은 첫째도 통일, 둘째도 통일’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고 싶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과감히 맡겨”
2025 서울 북한세계인권대회는 타이트한 일정으로 진행된다. 10월 22일 개회식과 함께 K-팝 가수 선예의 초청공연과 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낸 송상현 교수의 ‘북한 인권과 국제형사재판소, 그리고 자유통일’ 주제 강연, 북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둘째 날인 23일에는 니콜라스 에버슈타트 석좌, 수잰 숄티 대표, 니콜라이 슈프레켈스 독일 인권단체 ‘SARAM’ 대표 등의 강연과 국제인권전문가 보고, 탈북 디아스포라 포럼, 미래를 여는 청년 포럼이 열린다. 시청 앞의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 전시실에서는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의 필사 성경 원본과 장길수 가족 탈북 관련 사진들이 전시되고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서울광장 야외부스 전시장에는 미국 오토 웜비어 부스, 일본 메구미 부스, 한국 국적 피랍 억류자 6인 부스 등을 마련한다. 임창호 위원장은 “대회에 참여하는 연사들은 한 마음이다. 북한 주민들을 노예 같은 삶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이번 주제”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을 떠올리면 ‘재미없다’ ‘어둡다’ ‘무겁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물론 김씨 일가가 처참하게 인권을 짓밟기에 북한 인권 문제가 심각한 이슈인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정직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달 방법만을 쓴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좌파들은 어떤 이슈든 미화하고 재밌게 만들어 일반 대중의 마음을 훔쳐 가지만 우파들은 그러지 못하잖습니까. 똑같이 김치찌개를 팔더라도 그릇, 테이블, 조명, 가게 분위기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마치 ‘김치찌개는 맛으로만 경쟁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북한 인권 문제에 접근했다고나 할까요.”
“국민이 보고, 듣고, 체험하는 놀이터”
― 이번 대회는 다른가요?
“저희는 ‘재밌는 북한인권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재밌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회 자체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겁니다. 첫날, 둘째 날 콘서트를 하고, 30여 개 주제로 전시회를 합니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의 딱딱한 사연뿐 아니라 자두 한 알을 먹었다가 총살당한 북한 주민 이야기, 8·13·20세 한국과 일본·미국 아이들과 비교로 보는 북한 주민 이야기를 합니다. 북한 인권 유린을 고발한 다양한 스토리로 다가갈 생각이에요. 또 북한의 클래식 음악, 대중음악 등 예술 문화 퍼포먼스도 선보일 겁니다.”
― 큰 규모로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청 인근의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과 지하철 1, 2호선 연결 지하에 전시실을 마련해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이 필사한 성경, 또 죽는 순간까지 북한에서 써내려 간 한국판 《안네의 일기》 원본을 전시합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가족들과 증인들의 생생한 비디오 증언도 계속 상영하고요. 전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모전, 스피치 대회를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세션을 과감하게 맡겼습니다. 저희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두운 주제일지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고 관심 가질 수 있도록 보고, 듣고, 체험하는 놀이터로 만들 예정입니다. 부디 북한 인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많은 관심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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