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일보] 칼럼 - [평양투시경] 옥수수대 갈아 만든 종이에 쓴 필사본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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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주 자유통일연구소 소장
2025.10.12
오래 전 일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북한 보위부 출신을 만난 적 있다. 꽤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는 대남 업무도 맡은 적 있었는데, 당시 대남 업무는 보위부보다 통전부와 속칭 노동당 ‘3호 청사’가 주도했다. 필자의 기억에 남은 건 보위부의 지하 기독교인 탄압에 관한 일화였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 중반 김정일 후계자 시기에 지하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이 있었고, 80~90년대에도 극소수 잔여 기독교인들을 기회가 되면 적발해 공개처형했다고 한다.
북한의 기독교는 첫 유입된 평안북도 지역이 뿌리가 깊다. 그 보위부 요원은 평안북도 산골에 현지 조사를 나갔다. 지하 기독교인 일가족이 있다는 믿을 만한 아래 단위의 보고가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산기슭 멀리서 내려다보이는 외딴 집에 1주일 중 특정한 날 밤 12시를 넘긴 시각, 짧은 순간 촛불이 켜졌다가 꺼지는 장면이 오랜 기간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위부 요원들은 현장 채증이 필요했다. 지하 기독교인들은 체포되는 순간 동료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연계된 지하 망(網) 후속 수사가 어렵게 된다. 보위부원들은 산골 부부가 밭일을 나간 사이 소형 적외선 카메라를 몰래 설치하고 한 달여를 기다린 후 회수했다. 작전 개시 일시를 정하고 밤 12시 넘어 촛불이 켜지는 순간 덮쳤다. 일가족 4명이었다.
결정적 증거는 성경이었다. 그런데, 성경이 낡고낡은 공책에 연필 글씨로 한 글자씩 꼭꼭 눌러 쓴 필사본 성경이었다. 이들은 글씨조차 희미해진 필사본 성경으로 모두가 잠든 밤 12시 넘어 잠깐 촛불을 켜고 성경 한 구절을 봉독한 다음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필사본 성경은 몇 가구가 돌려본 흔적이 있었지만 끝내 전모를 밝혀내긴 어려웠다.
북한당국의 기독교 탄압은 유례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다. 모태(母胎) 기독교인이었던 고(故) 김현식 전 김형직사범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후계자로 책봉된 1974년 2월 노동당 5기8차 전원회의 이후 이른바 ‘계급 청소’ 명목으로 지하 기독교인들을 일제히 적발해내고 원산 공설운동장에서 공개처형을 한 바 있었다.
그때 집행관이 낭독한 내용이 "어버이 수령님을 모시는 우리 머릿속에는 김일성 사상밖에 없는데, 너희들(기독교인)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길래 미신을 믿느냐? 다같이 확인해보자"며 공업용 드릴로 머리를 뚫어 처형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김정일의 지시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김일성대에 종교학과를 설치하고 봉수교회·장충성당을 세워 ‘종교의 자유가 있는 척’ 사기를 친 배경은 대남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었다는 게 황장엽 전 김일성대 총장의 증언이다.
북한당국의 기독교 말살 정책이 유독 악랄했기 때문에 필자도 오랫동안 지하 기독교인들의 존재를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나치 하의 유대인만큼 엄혹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말살되지 않은 이유가, 어떤 상황에서도 기독교인들끼리 대를 이어 결혼하며, 체포돼도 동료를 불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이는 기막힌 역설(paradox)이기도 하다. 초창기 공산당 조직은 구교(로마 가톨릭) 조직 체계를 모방했고 북한 노동당 조직 체계도 거의 유사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 노동당 당원들 중 공산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수령독재 미신’인 당의 유일사상(영도)체계 확립 10대 원칙과 정치범수용소·공개처형·연좌제 등 악(惡)의 3종 세트가 사라지면 북한 정권은 2~3년 내 무너질 것이다. 다시 말해, 600여만 당원의 조선노동당이 0.001%에도 못 미칠 극소수 지하 기독교인들에게 내용적으론 패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평양 만수대 언덕에 높게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은 과거 장대현교회가 있던 그 자리다. 장대현교회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1907년 길선주 목사의 평양 대부흥회가 열린 곳이다. 북한당국은 이 자리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세우고, 이들을 신(神)의 지위에 올렸다.
오는 10월 22일~24일 서울 플라자호텔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최대 규모의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이 옥수수대를 갈아 종이로 만들어 사용한 필사본 성경도 전시된다.
2025.10.12
오래 전 일이다. 필자는 미국에서 북한 보위부 출신을 만난 적 있다. 꽤 고위직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는 대남 업무도 맡은 적 있었는데, 당시 대남 업무는 보위부보다 통전부와 속칭 노동당 ‘3호 청사’가 주도했다. 필자의 기억에 남은 건 보위부의 지하 기독교인 탄압에 관한 일화였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 중반 김정일 후계자 시기에 지하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이 있었고, 80~90년대에도 극소수 잔여 기독교인들을 기회가 되면 적발해 공개처형했다고 한다.
북한의 기독교는 첫 유입된 평안북도 지역이 뿌리가 깊다. 그 보위부 요원은 평안북도 산골에 현지 조사를 나갔다. 지하 기독교인 일가족이 있다는 믿을 만한 아래 단위의 보고가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산기슭 멀리서 내려다보이는 외딴 집에 1주일 중 특정한 날 밤 12시를 넘긴 시각, 짧은 순간 촛불이 켜졌다가 꺼지는 장면이 오랜 기간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위부 요원들은 현장 채증이 필요했다. 지하 기독교인들은 체포되는 순간 동료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 때문에 연계된 지하 망(網) 후속 수사가 어렵게 된다. 보위부원들은 산골 부부가 밭일을 나간 사이 소형 적외선 카메라를 몰래 설치하고 한 달여를 기다린 후 회수했다. 작전 개시 일시를 정하고 밤 12시 넘어 촛불이 켜지는 순간 덮쳤다. 일가족 4명이었다.
결정적 증거는 성경이었다. 그런데, 성경이 낡고낡은 공책에 연필 글씨로 한 글자씩 꼭꼭 눌러 쓴 필사본 성경이었다. 이들은 글씨조차 희미해진 필사본 성경으로 모두가 잠든 밤 12시 넘어 잠깐 촛불을 켜고 성경 한 구절을 봉독한 다음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필사본 성경은 몇 가구가 돌려본 흔적이 있었지만 끝내 전모를 밝혀내긴 어려웠다.
북한당국의 기독교 탄압은 유례없을 정도로 악명이 높다. 모태(母胎) 기독교인이었던 고(故) 김현식 전 김형직사범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이 후계자로 책봉된 1974년 2월 노동당 5기8차 전원회의 이후 이른바 ‘계급 청소’ 명목으로 지하 기독교인들을 일제히 적발해내고 원산 공설운동장에서 공개처형을 한 바 있었다.
그때 집행관이 낭독한 내용이 "어버이 수령님을 모시는 우리 머릿속에는 김일성 사상밖에 없는데, 너희들(기독교인) 머릿속엔 무엇이 들었길래 미신을 믿느냐? 다같이 확인해보자"며 공업용 드릴로 머리를 뚫어 처형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김정일의 지시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김일성대에 종교학과를 설치하고 봉수교회·장충성당을 세워 ‘종교의 자유가 있는 척’ 사기를 친 배경은 대남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이었다는 게 황장엽 전 김일성대 총장의 증언이다.
북한당국의 기독교 말살 정책이 유독 악랄했기 때문에 필자도 오랫동안 지하 기독교인들의 존재를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나치 하의 유대인만큼 엄혹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말살되지 않은 이유가, 어떤 상황에서도 기독교인들끼리 대를 이어 결혼하며, 체포돼도 동료를 불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이는 기막힌 역설(paradox)이기도 하다. 초창기 공산당 조직은 구교(로마 가톨릭) 조직 체계를 모방했고 북한 노동당 조직 체계도 거의 유사한 편이다. 하지만 지금 노동당 당원들 중 공산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북한의 ‘수령독재 미신’인 당의 유일사상(영도)체계 확립 10대 원칙과 정치범수용소·공개처형·연좌제 등 악(惡)의 3종 세트가 사라지면 북한 정권은 2~3년 내 무너질 것이다. 다시 말해, 600여만 당원의 조선노동당이 0.001%에도 못 미칠 극소수 지하 기독교인들에게 내용적으론 패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평양 만수대 언덕에 높게 세워진 김일성·김정일 동상은 과거 장대현교회가 있던 그 자리다. 장대현교회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1907년 길선주 목사의 평양 대부흥회가 열린 곳이다. 북한당국은 이 자리에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세우고, 이들을 신(神)의 지위에 올렸다.
오는 10월 22일~24일 서울 플라자호텔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최대 규모의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 북한 지하 기독교인들이 옥수수대를 갈아 종이로 만들어 사용한 필사본 성경도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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